2008. 10. 20. 03:53

훌륭한 엔지니어가 좋은 팀장이 되기 어려운 이유

훌륭한 엔지니어가 좋은 팀장이 되기 어려운 이유
 
(갓 팀장이 되어 어려워하고 있는 H님께, 드립니다.)

H님, 좋은 팀장이 되는 일은 원래 어려운 일이죠.
특히 H님같이 훌륭한 분은 좋은 팀장이 되기 더 어려운 법이예요.
제가 훌륭한 엔지니어에도 많이 부족하고, 좋은 팀장으로도 노력 중이지만,
그 동안 실수로 배운 이야기 몇 가지 알려드릴게요.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도 어렵지만,
좋은 엔지니어가 좋은 팀장으로 이어지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죠.
그건, 훌륭한 엔지니어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 좋은 팀장이 되는데 방해가 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기다림의 예술

저는 학교 다닐 때 프로젝트를 많이 했었기 때문에, 프로그래밍은 무척 쉬운 일이었죠. 회사에 들어와서 일을 하는데, 동료들은 그렇지 않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처음 C를 배우는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말이죠. 팀원일 때는 제가 맡은 부분만 하면 되었으니,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한테 중요한 일들이 대부분 떨어져서 부담스러웠다는 것 빼고는요.

팀장이 되면서 후배들하고 일을 하면서 문제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1일이면 할 수 있는 일을, 후배들은 1주일 혹은 1달이 걸린다는 것을 알고부터죠. 시간도 문제였지만, 결과물의 질도 문제였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시야도 한정되고 경험도 부족하다 보니, 설계부터 코딩방법 까지 많은 것을 가르쳐주어야 했죠. 그런데, 그 도와주는 시간이 제가 직접 하는 시간보다도 더 많다는 것이 문제였죠. 효율만 따진다면 후배들을 차라리 놀게 하고, 제가 직접 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물을 더 빠른 시간에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실제로 바쁘고 중요한 일들은 그렇게 진행되었고, 기회를 얻지 못하는 후배들은 배우지 못하고, 모든 일들은 팀장인 저에게로 몰리고... 악순환의 고리입니다.

"일 좀 잘하는 팀원 없나?" 하는 말이 나오더군요.
결국 원인은 저한테 있는데 말이죠. 하하.
후배들에게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걸 끈기 있게 기다려 주는 용기가 없었던 거죠.
근데, 이걸 실제 해보면 참 어려운 일입니다.
프로젝트 마감은 다가오는데, 후배를 믿고 잘 해봐라 하면서 한편으로는 어렴풋이 최악의 실패 상황도 상상하며, 클라이언트나 윗분들로부터의 우산도 되어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정말, 기다림이란 균형의 예술입니다.

보상은 일 잘하는 팀원을 얻게 되는 것이고,
'내가 없어도 잘 돌아가는 팀'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장점 바라보기

나무가 잘 자라게 하려면 물을 주어야 하듯이,
사람이 잘 자라게 하려면 칭찬을 주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고난에 해당하는 질책도 중요하지만 말이죠.
엔지니어의 일이라는 것이 오류를 찾아내어 세상이 올바로 동작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설계의 오류를 찾고, 코드의 오류를 찾듯이 말입니다.
잘 동작하는 부분이 99라도도 오류가 1이면 그곳에 신경을 집중하게 되죠.
이렇게 훌륭한 엔지니어의 능력이, 팀장으로써 후배를 바라볼 때는 방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부족한 부분이 더 많이 보이니까 말이죠.
후배를 바라볼 때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보고, 칭찬을 많이 해주어야 하는데,
이것이 엔지니어의 특성과 반대되다 보니,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도 좋은 팀장이 되려면, 장점을 크게보고 칭찬을 아끼지 말아야 겠죠.

H님 이야기 생각나네요.
"누가 저한테 잘한다 칭찬만 해주어도, 참 잘할 것 같은데 말이죠."


논리와 감성

엔지니어의 놀이 상대는 기계인 컴퓨터 입니다.
컴퓨터는 맞으면 맞는 거고, 틀리면 틀리는, 논리의 세계이죠. 매력적입니다.
이와 달리, 사람의 관계는 논리도 중요하지만, 감성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네~ 말씀이 맞기는 한데, 말투가 기분이 나빠서 그렇게 안 하렵니다."
이런 식이죠.

그 동안은 컴퓨터하고만 잘 지내면 훌륭한 엔지니어가 될 수 있었지만,
이제는 팀원들과도 잘 지내고, 윗분들도 잘 설득시켜야 훌륭한 팀장이 될 수 있습니다.
저도 한동안 '왜 옳은 것을 하지 않을까?' 하는 나만의 생각을 하며, 실수를 많이 했죠.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옳다'는 것은 그다지 큰 부분을 차지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 보다는 잘 웃고, 인사 잘하고,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그리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참 어렵습니다.
게다가, 사람간의 관계에서 정답이란 없습니다.



또 나머지 실수들도 많았지만,
배움에 있어서 실수란 꼭 필요한 것이죠.
H님 스스로 실수하시면서, 하나씩 배워나가길 바래요.

그래도 결국, H님은 훌륭한 팀장이 될 겁니다. 아주 훌륭한 팀장이 될 거예요.
제가 바라는 건, 지혜로운 여행을 하는 동안 항상 즐겁기 바랄뿐이랍니다.

고맙습니다.

제임스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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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예술이라.....